특집기사

[교황 방한] 순교자 피와 땀·눈물 고스란히 배어있는 역사적 장소

시복식 열린 광화문광장과 서소문순교성지의 의미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124위 시복식에 앞서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기도하고 있다. 124위 복자 가운데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는 27위에 이른다. 사진= 공동취재단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거행된 서울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이다. 그러나 시복미사가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것은 그런 표면적 이유에서가 아니다. 초기 순교자들이 고초를 겪고 목숨을 바친 순교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곳이 광화문광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24위가 시복의 영예를 안음에 따라 광화문광장은 고난을 딛고 선 영광의 터가 됐다.

광장으로 조성된 광화문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는 조선조 때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ㆍ형조ㆍ공조의 육조(六曺)를 비롯해 주요 관아가 모두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형조에서는 103위 성인 중 7위가 문초를 겪었으며, 124위 가운데서도 7위가 옥고를 치렀다.

게다가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좌우측, 그러니까 종로나 신문로 일대에도 사학 죄인인 천주교도들을 체포해 가두거나 심문하고 심지어 처형하던 관청들이 늘어서 있었다.

좌포도청(종로3가 단성사 앞)과 우포도청(동아일보 옛 사옥 터)에서는 103위 성인 가운데 22위가 순교했고, 124위 가운데서도 5위가 순교했다. 의금부(종각역 1번 출구)에서는 103위 성인 가운데 16위가, 124위 복자 가운데 9위가 문초를 받고 죄인으로 단죄돼 처형장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124위 복자 가운데 유일한 성직자이자 중국인인 주문모 신부도 이곳에서 문초를 받았다. 의금부 맞은편 전옥서(영풍문고 자리)에서는 순교 선조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4년까지 갇혀 있다가 옥사하거나 끌려나가 순교했다. 기록에 의하면 17명의 순교자가 이곳에 있었다.

이처럼 124위 시복식이 거행된 광화문 광장과 그 주변 일대는 “순교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역사적 장소”(염수정 추기경 시복식 인사말)다. 그런 단죄의 현장에 복되다고 노래하는 시복 찬가가 울려 퍼지고, 그 현장을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온 국민, 나아가 전 세계가 감동으로 지켜봤다. 죽음의 굴레를 씌우던 처단의 장이 감동을 안겨주는 축복의 장으로 변했다.

염 추기경이 시복식 인사에서 “오늘 시복식은 가톨릭 교우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 나아가 아시아의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새롭게 부각되는 서소문순교성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복미사를 주례하기에 앞서 서소문순교성지에 들러 순교 현양탑에 헌화하고 이곳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

박해 당시 대표적인 처형지였던 서소문순교성지는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다.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가, 이번에 시복된 124위 가운데서는 27위가 이곳에서 순교의 칼을 받았다. 그래서 교황이 직접 방문한 것이다. 성지 옆에는 한국에서 처음 지어진 중림동약현성당이 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광장과는 불과 1.5㎞ 남짓 떨어진 곳이다. 지금은 도심이나 마찬가지지만 박해 당시만 해도 사대문 밖 변두리였다.

한국교회는 이곳을 세계적 순교성지로 탈바꿈시키고자 현재 정부의 협조를 얻어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8월까지 5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1만 7344㎡ 부지에 지상 공원과 순교자 박물관(3000㎡), 광장(2000㎡), 경당(120㎡), 공용공간(1500㎡) 등을 세울 예정이다. 이 사업이 끝나면 서소문순교성지는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적 성지로 거듭나게 된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16일 저녁 기자 브리핑에서 “서소문역사공원 조성은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연결하는 좋은 사업”이라며 “교황님도 서소문순교성지에서 이 사업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고 밝혔다.

롬바르디 신부는 또 “124위 순교자가 광화문에서 새로운 영웅이 되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다”면서 “오랫동안 박해를 상징하던 공간이었던 광화문이 이제 매우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님은 한국 순교사와 함께 순교자들이 교회사와 오늘날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에 크게 감동하셨다”고 덧붙였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