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 방한 결산] 사랑의 화수분, 온몸으로 소통하는 교황

세월호 유가족 손 잡아주며 마음 다해 위로와 치유를

 

 

▲ 프란치스코 교황이 청년들에게 이탈리아어 즉흥연설로 신앙 열정을 불러일으켜주고 있다. 공동취재단

 

▲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한 아기의 입에 손가락을 물려주고 있다. 공동취재단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에 앞서 오픈카에서 내려 김영오씨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4박 5일간 한국을 사목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언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곳곳에서 보여준 표정과 행동이 그의 마음을 모두 대변해줬기 때문이다.

교황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면 한가족이 된 것처럼 ‘고통에 동참’하고, 어린아이들에겐 주저없는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엔 주먹을 쥐어가며 강한 어조로 연설했다. 혹자는 이런 모습을 보며 ‘파파가 보여준 행위예술’이라고 평했다.



경청하며 함께 아파하는 교황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환영단 속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처음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주교단 환영을 받으며 미소를 보이던 교황은 세월호 가족을 만나자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속 깊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아픔에 함께하고자 했던 자신의 방문 이유를 도착하자마자 보여준 셈이다.

이 같은 모습은 16일 서울 광화문 시복식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수십만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시복식장에 입장한 교황은 이례적으로 오픈카에서 내려 세월호 가족을 위로했다. 카퍼레이드하며 환한 미소를 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교황은 34일간 단식농성 중이던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손을 잡고 마음을 다해 위로해줬다. 교황은 김씨의 청원을 말없이 들어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경청을 동반하며 고통에 동참하는 교황의 치유 행위다.



아이만 보면 스킨십하는 교황

교황은 아이들을 만나면 가장 밝은 표정을 짓는다. 교황 오픈카로 들어 올려진 갓난아기들을 축복하는 행위는 교황의 전매특허다. 얼굴을 맞대고 뽀뽀하고, 이마에 안수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가 주는 더없는 축복이다. 교황은 한국에서 카퍼레이드하는 내내 수차례 차를 멈추며 아이들을 축복했다. 오죽했으면 ‘아이 뽑기 담당 경호원’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어찌 됐든 교황의 스킨십 사랑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은총과 기쁨을 준다.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교황은 장애인들이 준비한 공연을 관람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한참 공연을 지켜본 교황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 위로 ‘손 하트’를 그리는 장애인을 따라 함께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같은 몸짓으로 장애인들과도 소통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경악’을 자아내게 한 장면은 교황이 어린 아기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준 모습. 부모에게 버려져 엄마의 품과 젖을 그리워했을 아기에게 교황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물려줬고, 작은 아기의 마음까지도 읽어낸 교황을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청년들에겐 열정을

교황은 청년들을 만나면 힘 있는 연설가가 된다. 15일 대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한 청년 6000여 명과 만난 ‘청년들과의 만남’ 시간에 교황은 느닷없이 영어로 읽던 연설문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교황은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면서 이탈리아어로 즉흥연설을 한 것이다. 교황은 30분간 즉흥연설에서 “주님을 공경하고, 주님 뜻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질문하며 살자”고 힘줘 말했다. 연설 후엔 다가오는 청년들과 격의 없이 셀카(셀프카메라)를 함께 찍기도 했다.

이날 교황 의전을 담당한 유흥식(대전교구장) 주교는 “교황님께서는 이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와 청년들과 오찬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다소 지친 모습도 보였는데, 청년들을 만났을 때엔 어디서 그렇게 힘이 다시 솟아나셨는지 열정적으로 청년들에게 연설하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17일 대전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 강론에서도 교황은 청년들에게 “Asian youth, wake up!(아시아 청년들이여, 일어나라!)”이라며 분명한 뜻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청년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연설가다운 면모다. 사람을 사랑하는 교황



온몸으로 소통한 교황은 작은 요청도 ‘기억’하고 지켰다. 세례를 받고 싶다던 이호진씨에게 이틀 후 예정에 없던 세례식을 집전하는가 하면,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계속 달고 있었다.

마지막 날인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례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서는 미사 전 한국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에게서 선물 받은 십자가를 파견 강복 때 사용했다. 미사 전례에서 종교 화합의 상징을 보여주는 교황의 기지가 빛나는 순간이다.

20년간 바티칸을 취재해온 한 외신 기자는 “이전의 브라질ㆍ중동 때와 비교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동과 몸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한 점이 특이했다”며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황의 진심을 더 많이 전하려고 한 것 같았다”고 했다.

교황과 20년 지기인 문한림(아르헨티나 산마르틴교구) 주교는 “교황께서는 사람들 아래로 내려와 편안하고 자상하고 쉽게 대화하시는 분”이라며 “교황님은 신부일 때나, 주교일 때나, 추기경일 때나, 교황일 때나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 분”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과거 “내가 아는 유일한 언어는 몸의 언어”라고 한 바 있다. 한국어라는 새로운 언어보다 누구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표정과 몸짓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대한민국 곳곳을 아름다운 소통의 현장으로 바꿔줬다. 세상 모든 이들과 살을 맞대고 사랑을 나누는 교황의 진정한 소통을 배우는 것은 우리 몫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