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뙤약볕 속 순례 길, 몸은 땀에 마음은 순교영성에 흠뻑 젖었다

뙤약볕 속 순례 길, 몸은 땀에 마음은 순교영성에 흠뻑 젖었다
 
서울 순교자현양회·평협 3코스로 나눠 도보순례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500여 명에 이르는 순례자들과 함께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밖 낙산공원 성곽탐방로를 걷고 있다. 오세택 기자
 
▲ 절두산순교성지를 출발한 530여 명의 순례자들이 새남터 순교성지를 향해 한강변을 걷고 있다. 백슬기 기자
 
▲ 2코스 출발지인 가회동성당에서 조규만 주교가 출발에 앞서 순례길에 대해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유리 기자



짧게는 1시간 30분, 길게는 4시간 30분에 이르는 힘겨운 순례 길.

뜨거운 햇살에 살갗이 따갑고,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하지만 순교자들이 걸은 순교의 길에 비할까. 손에 든 묵주가 땀에 푹 젖도록 순교자들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의 순례 여정은 기쁘고도 감격스러웠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와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5월 31일 3개 코스로 나눠 ‘103위 순교성인 시성 30주년 기념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방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결정 축하 도보 성지순례’를 했다.

참가자들은 명동주교좌성당과 가회동성당, 절두산순교성지를 각각 출발해 세 코스로 나눠 서소문 순교성지까지 걸으며 묵주기도 속에서 순교자들과 하나되며 깊은 순교신심을 체험했다. 서소문 순교성지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순교자 현양미사를 봉헌하며 200여 년 전 피의 박해와 뜨거웠던 순교신심을 새기며 새로운 복음화에 온전히 투신키로 마음을 모았다.

순례엔 염 추기경과 교구 총대리 겸 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 조규만 주교를 비롯해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 등 1700여 명이 함께했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습, 그대로의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길이고 또 순교의 길”이라며 “예수님과 함께, 성모님께 함께 기쁘게 순교의 길을 걸어가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을 따라 복음의 기쁨을 믿고 살고 선포하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이 함께한 1코스 순례는 직선거리로 9.6㎞, 4시간 30분이 소요됐으며, 500여 명이 참가했다. 명동성당을 출발해 →명례방집회가 열린 김범우 집터→첫 세례식이 거행된 이벽 집터→좌포도청→종로성당 포도청 순교자현양관→서울성곽→낙산공원 성곽탐방로→혜화동성당→1795년 조선에서 첫 미사가 봉헌된 최인길(마티아)의 집이 있던 북촌한옥마을과 석정보름우물→가회동성당까지 걷고, 최종 집결지인 서소문순교성지까지는 또 다시 걷거나 노약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코스는 특히 순교 영성과 함께 문화유산의 향기를 흠씬 맛본 순례코스였다.

폐암 말기로 투병 중임에도 순례에 참가한 김성희(요한 데레사, 72, 서울 종로본당)씨는 “103위 성인과 하느님의 종 124위께서 걸으셨던 순교의 길과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는 데 감격했고, 짧은 생이겠지만 1만분의 1이라도 순교자들을 닮은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코스 순례에 참가한 순교자현양회 양두석 회장은 “103위 성인 시성 30주년과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결정을 계기로 2차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들과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운동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조 주교와 순례자 650여 명이 동행한 2코스는 직선거리로 5.7㎞, 1시간 30분의 가장 짧은 여정이었다. 가회동성당→형조터(옛 육조거리)→우포도청터→덕수궁 돌담길→경기감영터를 거쳐 서소문순교성지까지 이어졌다. 조선땅을 밟은 첫 선교사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선교영성과 순교신심, 북촌한옥마을의 아름다운 정취, 형조와 우포도청, 경기감영 등 순교지를 통해 순교영성을 체감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본당 신자들과 함께 참가한 장윤기(베드로, 27, 서울 노원본당)씨는 “당시 형장으로 향하던 순교자들의 모습이 오늘 순례자들의 도보순례 행렬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혼자 순례를 할 때와는 달리 잡념이 들지 않고 순례의 의미를 오롯이 새길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권길중 회장은 “서울 땅 어느 곳을 밟아도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순교지가 아닌 곳이 없다는 걸 순례를 하고 나서야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3코스는 직선거리로 12.5㎞에 7시간 여정으로 가장 길었지만, 단축해 4시간 30분간 순례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새남터기념성당→당고개 순교성지를 거쳐 서소문순교성지까지였다.

강변 공원길을 걸어 성직자의 성지라 할 새남터 성지와 성가정 성지인 당고개 성지를 거쳐 가장 많은 44위의 순교성인과 시복이 결정된 27위 하느님의 종을 배출한 서소문순교성지에 이르는 알찬 순례였다. 그래선지 530여 명이 참가, 강바람에 땀을 식히며 순교자들이 형장으로 향하던 순교의 길을 마음에 아로새겼다.

최윤자(체칠리아, 64, 서울 서원동본당)씨는 “순교자들 덕에 저희가 이렇게 평안히 신앙생활을 하는 만큼 그 순교영성을 이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사당동본당 청년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한 채성욱(루카, 28)씨도 “무더위에 오래 걸어 힘겨웠지만 신앙선조들의 순교영성에 젖어드는 순례이기에 이겨낼 만하고, 또 가치도 충분했다”고 고백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