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124위 순교지를 가다 <9>수원교구 양근 순교지

신앙의 뿌리 단단히 내리고 복음의 기쁨 전한 순교자의 땅
 
124위 순교지를 가다 <9>수원교구 양근 순교지
 
▲ 양근성지 주임 권일수 신부가 124위 중 윤유오와 윤점혜, 권상문 등 3위가 순교한 양근천과 남한강 합수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 양평역 후문에 세운 양근 관아 터 표석.
 
▲ 지난 2013년 9월 양근 순교지 근처에 있는 양근섬지구에 세운 순교 기념 상징조형물.
 
▲ 양근 성지 내 권철신ㆍ일신 형제 흉상.
 
▲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484-1, 일명 덕구실에 살았던 권일신이 인근 선비들과 함께 시회를 열었던 감호암. 감호암 위에는 감호정이 세워져 있었다.
 
▲ 2011년 5월에 세워진 양근성지 순교자 기념성당.



양근 순교지로 가는 길은 ‘꿈결 같다’. 경춘선에나 비견될 중앙선이 2007년 12월에 등장하면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에서 환승하면, 용문역까지 아련한 추억이 깃드는 중앙선이 이어진다. 56.59㎞, 1시간 10분 여정이다. 그 낭만적 선로를 따라 오빈역에 다다르면 양근성지(주임 권일수 신부)가 5분 거리(1.14㎞)에 있고, 순교지 또한 인근에 있다.

양근이라는 지명은 ‘양제근기(楊堤根基)’라는 말에서 비롯했다. ‘방죽에 버드나무를 심어 농지 유실을 막고 튼튼한 근원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고구려 시대 때부터 써왔다. 1908년 9월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쳐 ‘양평군’이 됐다지만. 양근이라는 지명은 곳곳에 살아 있다. 양평읍 내 양근1∼10리, 양근대교도 양근이란 지명에서 따왔다. 



신앙의 뿌리 깊은 양근

‘버드나무 뿌리’가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1779년 권철신(암브로시오, 1736~1801) 주도로 여주 주어사 터에서 이뤄진 한역서학서 강학은 신앙 수용에 뿌리가 됐다. 권철신ㆍ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51∼1792) 형제는 1784년 9월 서울 수표교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 이후 양근은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 됐다. 이웃한 마재의 정약전(1758~1816)ㆍ약용(요한, 1762∼1836) 형제도 그의 제자였고,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59~1801)과 ‘호남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 56∼1801), 홍낙민(루카, 1751~1801), 이승훈(베드로, 1756~17801), 이벽 등도 모두 권철신 문하였다. 이들이 ‘가성직제도’를 도입, 미사와 견진성사를 집전한 곳도 양근이었다. 양근성지는 권철신ㆍ일신 형제의 유택지인 현재의 양평군 군립도서관 입구에 빗돌을 세워 이를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신앙의 뿌리’가 된 양근은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오는 8월 16일 시복의 영예를 안게 되는 밀사 윤유일(바오로, 1760∼1795)의 동생 윤유오(야고보, ?∼1801)와 ‘동정녀 공동체’ 회장으로 활동한 윤점혜(아가타, ?∼1801), 권철신의 양자이자 권일신의 아들인 권상문(세바스티아노, 1769∼1802) 등 3위는 모두 양근에서 피를 흘렸다.

그 순교지는 현재의 양근성지에서 불과 9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옛 오밋다리 옆 백사장, 지금의 양근리4거리 대교 아래다. 그곳엔 6ㆍ25 양민학살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예나 이제나 처형지는 같았던 셈이다. 양근성지는 이를 기려 2013년 9월 양근리 양근섬지구에 순교 상징 조형물 ‘영원으로 가는 사다리’(Veritas liberabit vos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 8,32)를 세웠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이숙자(체칠리아) 수녀에게 의뢰, 일반 순교기념비와는 달리 둥근 고리를 세우고 그 앞에 두 손을 형상화했다. 둥근 고리는 영원, 곧 하느님을, 오른손은 남성 순교자들을, 왼손은 여성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

순교지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양평역 후문 양일고교 아래 마을 양근리, 곧 관문골 옛 양근 관아에서도 옥중 순교자가 생겨났다.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인 조상덕(토마스),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인 장사광(베드로)과 손 막달레나 등이 옥사했다. 양근성지에선 그래서 이곳에도 표석을 세워 순교자들을 기린다. 

양근 지역 순교자는 현재 양근리 오밋다리 부근 순교자와 관문골 양근관아 옥중 순교자를 합쳐 모두 14위에 이른다. 또 124위 순교자 가운데는 1819년 8월 3일 기묘박해 당시 한양(서소문 밖 형장으로 추정)에서 순교한 동정부부 조숙(베드로, 1787∼1819)ㆍ권천례(데레사, 1784∼1819, 권일신의 딸), 서울 서소문밖에서 순교한 손경윤(제르바시오, 1760~1802)과 홍익만(안토니오, ?~1802), 그리고 서대문 경기감영(현 적십자병원 자리)에서 순교한 조용삼(베드로, ?∼1801)도 양근 출신이다. 

권일수 신부는 “모든 문명이 강에서 출발하듯 한강변 양근은 실학자들이 서학을 연구하다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의식 혁명을 이룬 곳”이라며 “그러기에 양근은 조선교회 설립기 순교자들의 고향이었으며,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지가 됐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지만, 8165.29㎡(2470평) 규모 양근 성지가 개발된 것은 오래지 않다. 2003년부터니까 이제 11년 남짓하다. 그렇지만 국내 어느 성지 못지않게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고 아름답다. 이런 성지가 또 있을까 싶다.

성지에 들어서면, 권철신ㆍ일신 형제와 권일신, 조숙ㆍ권천례 동정부부의 흉상과 전신상,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 14처, 순교의 큰 칼, 병인박해 때 순교한 권일신의 증손자 권복(프란치스코, 1812~1868)의 묘가 들어서 있고, 녹암정과 직암정, 감호정 등 정자가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다. 2011년 5월에 지은 순교자 기념성당도 순교자들의 뜨거웠던 순교신심을 오늘에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성전이 되고 있다. 다만 성전이 비좁아 현재 주차장 부지에 새로운 대성전 건립을 구상 중이다. 평일(월요일 제외)에는 오전 11시, 주일엔 오후 2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양근성지 하면, 순례를 빼놓을 수 없다. ‘양근 성지 하늘 사랑 길’로 명명된 도보ㆍ자전거 순례코스는 3코스가 마련돼 있다. 성지를 출발해 이포보 방향으로 떠나 양근 관아 터에서 마무리하는 1코스, 성지에서 윤유오의 고향 점뜰까지 이어지는 2코스, 성지에서 두물머리 방향으로 떠나 양수리성당에서 끝나는 3코스가 있다. 또 하나, 수상순례는 양근성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순례다. 양평군 강상면 독배길 32-25 쎄시봉선착장에서 승선, 감호암과 감호정→양근성지→옛 오밋다리 순교지→권철신ㆍ일신 형제 유택지→여주 점뜰을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서울대교구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절두산 순교성지를 거쳐 양근 성지에 이르는 63.48㎞의 한강변 자전거도로 순례는 4시간 10분 여정이다. 순례와 운동을 겸할 수 있는 특별한 순례코스다. 돌아올 때 힘들면 전철로 귀가해도 되니 그리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순례코스다.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물안개공원길 37(오빈리 173-2). 문의 : 031-775-3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