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하느님의종 124위 열전]<4>윤유일ㆍ지황ㆍ최인길

[하느님의종 124위 열전]<4>윤유일ㆍ지황ㆍ최인길
 
사제 영입 위해 청나라 간 조선교회 밀사들
 
▲ 윤유일이 구베아 주교를 만났던 중국 베이징 난탕(南堂) 천주당. 사진은 지난 2009년 성탄시기 당시 난탕 대성당이다. 【CNS】

 '밀사(密使)'하면, 다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 특사로 파견된 이준(1859~1907) 열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에 앞서 조선 천주교회에도 밀사가 있었다. 초기 조선교회의 가장 큰 현안이던 '사제 부재'라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성직자 영입을 위해 중국에 파견된 윤유일(바오로, 1760~1795)과 지황(사바, 1767~1795) 등이었다. 청나라에 조선교회 밀사로 파견된 이들은 기어코 성직자 영입을 이뤄냈고, 최인길(마티아, 1765~1795)은 이에 부응해 한양에 선교사 은신처를 마련하고 선교 거점을 확보했다.
 
 첫 밀사 파견은 조선교회가 설립된 지 5년 만인 1789년에 이뤄졌다. 밀사로 선발된 신자는 경기도 여주의 몰락한 양반인 윤유일이었다. 교리와 학식에 밝았을 뿐 아니라 심지가 굳고 성격이 온순했던 그는 그해 10월 베이징을 오가는 상인으로 가장, 연례 사절단 일행에 끼어 베이징에 들어갔다. 조선교회가 중국교회에 전할 서한을 옷 안에 숨긴 채였다. 이듬해 초 베이징 베이탕(北堂) 천주당에서 라자로회 선교사들을 만난 그는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곧 이어 난탕(南堂) 천주당에서 구베아 주교를 만나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하는데 필요한 준비'에 대해 들었다.
 
 1790년 봄 윤유일이 귀국하자 조선교회는 그의 전언을 토대로 성직자 영입 계획을 마련했고, 윤유일은 다시 한 번 베이징에 다녀와야 했다. 지금이야 서울과 베이징 간 항공편 거리가 940㎞으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3025리(이갑의 「연행기사(燕行記事)」 기준), 곧 1187.99㎞나 되는 긴 여정이었다. 한양과 베이징을 두 번이나 오간 윤유일 덕에 구베아 주교는 1791년 중국인 오 요한(포르투갈 이름 Dos Remedios) 신부를 조선에 파견했지만, 오 신부는 국경에서 조선교회 신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다시 베이징에 돌아와 선종하는 바람에 결국은 입국에 실패한다.
 
 1791년 말에 일어난 신해박해로 성직자 영입운동은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년 뒤 다시 성직자 영입이 재개돼 윤유일과 한양의 궁중악사 집안 출신인 지황, 박 요한(혹은 백 요한)이 밀사로 선발돼 다시 국경을 넘는다. 이들 중 윤유일은 국경에 남았고, 지황과 박 요한은 조선 사신 행렬에 끼어 베이징으로 향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뒤 '40일간 눈물을 흘리며 견진과 고해, 성체성사를 받는' 지황의 모습에 감동한 구베아 주교는 1794년 초 주문모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24일 밤 의주를 통해 마침내 주 신부가 조선에 입국함으로써 성직자 영입은 성공한다.
 
 한양의 역관 집안 출신인 최인길은 이듬해 1월 5일 주 신부가 한양에 도착하자 자신이 마련한 한양 계동집(현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주 신부를 은신시킨다. 이때부터 그는 주 신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얼마 안 돼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교우들의 재빠른 대처로 주 신부는 다행히 최인길의 집에서 빠져나와 강완숙(골룸바, 1761~1801)의 집으로 피신했다. 이에 앞서 피신 시간을 벌어주고자 주 신부로 위장했던 최인길은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물론 이런 위장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주 신부는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주 신부의 입국 경위가 밝혀지고, 밀사로 활약한 윤유일과 지황도 곧바로 체포됐으며, 이들 셋은 1795년 6월 28일 포도청에서 곤장을 맞다가 숨을 거둔다. 이것이 이른바 '을묘박해'다.
 
 사극에서나 보던,'매를 맞다가 죽는' 참상이 스쳐 간다. 주리에 곤장이 등장하고 피범벅이 된 순교자들은 박해 도구에 기대어 가쁜 숨을 내쉰다.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야 상상할 수 없는 고초지만, 이들의 순교라는 씨앗에서 교회는 자라나고 쇄신된다. 이들 순교자는 '땅에 떨어지고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는'(요한 12,24) 밀알과도 같은 셈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피는 오늘에도, 미래에도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 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