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호외] “다음엔 교황님께 점심 사드리고 싶어요”

거식증 앓았던 박찬혜씨, 교황과 오찬 

“신부님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2010년 여름. 한 중년 여성이 박진홍(대전교구 청소년국장) 신부를 찾아왔다. 그는 “고3인 딸이 거식증에 걸렸다”며 “딸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박 신부는 “내가 사람을 살릴 능력은 없지만 친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 딸의 증상을 물었다.

 

세계청년대회 계기로 변화

딸은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내는 식이장애(거식증)를 앓고 있었다. 19살이었지만 키는 153㎝, 몸무게는 겨우 27㎏이었다. 박 신부와 처음 만났을 때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학교는 휴학 중이었다. ‘이 아이는 죽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년이 지난 2014년 8월 15일, 대전가톨릭대에서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한 아시아 17개국 청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점심식사를 했다. 한국 청년도 있었다. 4년 전 거식증을 앓던 그 소녀, 박찬혜씨였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4년 전 박 신부가 만난 박씨는 어떤 얘기를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기만 했다. 당시 스페인세계청년대회 참가를 준비하고 있던 박 신부는 무심코 “2011년에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데 같이 갈래?”라고 권유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박 신부는 “네 체중이 40㎏는 넘어야 데려갈 수 있다”며 살을 찌우면 세계청년대회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이후 박 씨에겐 ‘세계청년대회 참가’라는 꿈이 생겼다.

 

고통받는 아이들 돕고파

박씨는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서 입원했고 ‘꼭 낫겠다’는 의지로 힘든 치료를 이겨내  마침내 스페인으로 떠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박씨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마드리드 시내를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세계청년대회를 즐겼다.

대회에 다녀온 후 박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거식증 증상은 더 없었다. 복학도 했다. 박씨는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심리상담사가 되는 게 꿈이다.

박씨는 교황에게 “1~2년 후에 유럽 여행을 할 계획인데 그때 바티칸에 가면 점심식사를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고 교황은 “수요일 알현 시간에 앞자리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박씨는 “이번에 같이 점심식사를 한 친구들과 함께 교황님을 다시 한 번 꼭 알현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임영선 기자 hellor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