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 방한, 한국교회 새 복음화 전기로 삼아야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교황 방한 특별 심포지엄’

 

▲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가 5월 30일 개최한 교황 방한 특별 심포지엄에서 조규만 주교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남정률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하느님의 종 124위의 순교 영성과 평화통일을 새롭게 조명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 이하 방준위)는 5월 30일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교황 방한 특별 심포지엄을 열고,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과 함께 교황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인 124위 시복식 및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의 의미를 짚었다.

방준위 영성신심분과(위원장 조재형 신부)와 새천년복음화연구소가 주관한 이 날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은 육화론적 영성을 살았던 124위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신앙의 모델이 될 수 있으며, 한국교회가 ‘새 복음화’의 과제를 충실히 수행할 때 평화통일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교황의 가장 큰 관심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이며, 교황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지나친 물질 위주의 삶”이라면서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교황의 방문이 한국교회가 더욱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했다.

방준위 집행위원장 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기조연설에서 “교황은 한국과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평화와 화해를 전하며, 한국교회 순교자 124위를 시복하기 위해 먼 길을 오신다”고 교황 방한의 취지를 설명했다.

조 주교는 “목숨을 다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 오늘날의 순교”라며 순교 영성을 재해석하고, “세상의 평화와는 다른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정착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초기 교회와 순교 영성’를 발표한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는 먼저 초기 교회 신자들의 영성을 △제1기(초창기∼1791년 진산사건) 보유(補儒)론적 영성 △제2기(1791∼1835년 프랑스 선교사들 입국) 육화론적 영성 △제3기(1835∼1882년 신앙의 자유 묵인) 종말론적 영성 등 크게 3단계로 구분했다.

보유론적 영성은 천주교 교리와 유학의 가르침을 조화롭게 파악하는 것이며, 육화론적 영성은 보유론을 넘어 보편적 형제애를 기초로 조선의 사회 질서를 실천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영성은 현세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되 종말과 천국을 지향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오는 8월 시복되는 124위의 주류는 제2기 육화론적 영성을 살았던 순교자들”이라며 “이들의 영성은 오늘의 현실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윤지충과 권상연, 정약종ㆍ주문모ㆍ최창현 등 124위 순교자들이 만났던 하느님을 다시 만날 때 그들의 영성을 이어받고 그들 삶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논평을 통해 “당시 순교는 인간 존엄성과 평등성,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향한 욕구와 함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고 있다”며 “이러한 신앙적 유산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심상태(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몬시뇰은 ‘한반도 평화통일과 한국교회의 과제’ 발표에서 “민족화해를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은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 범위 안에서 이뤄짐에 따라 북한 주민 지원 활동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평화 기류 조성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등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심 몬시뇰은 △승자 독식 구조의 정치 풍토를 공유적 구조로 전환 △사회 양극화의 주 요인인 시장 자유주의적 경제의 민주적 개선 △도덕의식 회복을 통한 민주적 사회 통합 △갈수록 격화되는 남·남 갈등 회복 등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꼽았다.

심 몬시뇰은 아울러 “한국교회는 한반도 평화가 교회와 민족 모두의 중대 사안임을 인식하고, 교회의 보편적 가르침에 따라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통일 원리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대결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초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현실적 개선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 몬시뇰은 이 같은 개선안인 ‘한민족 가톨릭교회 화해안’(가칭)은 주교회의 관계 기관 책임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교회적 기구를 통해 초안을 마련한 뒤 설문조사와 학술발표회 등을 거쳐 확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심 몬시뇰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을 토대로 1980년대부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역설해 온 ‘새 복음화’에 한국교회가 투신할 때 사랑에 기반을 둔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며 한국교회가 교황 방한을 새 복음화의 전기로 삼아 평화통일의 견인차가 되기를 희망했다.

한정관(서울대교구 신당동본당 주임) 신부는 논평에서 남북 화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 차원의 전담 기구 설립 및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할 뿐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은 보편적 박애 정신을 넘어 피를 나눈 형제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