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순교자의 옥중편지, 교과서에도 실어야죠”

“순교자의 옥중편지, 교과서에도 실어야죠”
 
국문학자 정병설 교수, 순교자 이순이 옥중편지 중심으로 생생한 신앙 박해사 전해
 
▲ 정병설 교수는 비신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순교사를 연구해 책으로 펴냈다. 그는 “한 인간의 죽음을 넘는 신앙 사상이 담긴 옥중편지는 젊은이들이 새겨야 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
 



비신자가 순교자 이순이(루갈다)의 옥중편지에 매료돼 책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옥중편지에 담긴 순교자의 높은 정신적 가치에 감동해 펜을 들었다. 「죽음을 넘어서 - 순교자 이순이의 옥중편지」(민음사)를 쓴 국문학자 정병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연구를 목적으로 썼다는 책은 마치 한 권의 소설 같다. 주인공 이순이를 중심으로 당시 순교자들이 겪은 박해 현장의 생생함이 책장 곳곳에 흐르기 때문이다. 교회 밖 학자가, 그것도 비신자가 순교사를 연구해 책으로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대에서 만난 정 교수는 “이순이를 천주교 신자가 아닌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의 숭고한 모습을 복원해 내고자 책을 썼다”며 “조선 시대 후기 근대사에서 지니는 천주교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프랑스 신부 샤를 달레가 조선 민중 사회를 깊숙이 체험하고 쓴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 이순이의 옥중편지를 처음 접했다. 옥중편지는 이순이가 신유박해(1801년) 시기 옥중에서 어머니와 두 언니에게 한글로 쓴 기록이다. 편지에는 이순이의 굳건한 신앙심이 글자마다 깊이 새겨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갑부 집안인 남편 유중철(요한)과 논의해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조선 시대 통틀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굳건한 믿음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이 같은 의식과 박해에도 꺾이지 않는 굳은 신념은 학자인 그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정 교수는 책에서 “순교가 은혜라면 조선은 복 받은 땅이다. 성경이 복음이라면 조선 사람은 스스로 복을 찾은 사람이다”며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했다.

정 교수는 십수 년에 걸쳐 이순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교회 밖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자 교회와는 어떠한 접촉 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지난해부터는 여러 곳에서 이를 주제로 몇 차례 강의도 펼쳤다.

정 교수는 “사학죄인을 배출했다는 이유로 대박해를 받은 당시 천주교는 근대를 맞는 조선에 커다란 내적 성장을 가져온 사상이었다”며 “한 인간의 죽음을 넘는 신념과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한 신앙 사상이 담긴 옥중편지야말로 교과서에 수록해 젊은이들도 새겨야 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글은 이순이와 유항검 일가의 순교 현장에서 시작한다. 순교자들이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으면서 겪는 과정이 물 흐르듯 전개되며, 당시 순교자들이 느꼈을 시련과 기도의 과정이 생생히 그려진다. 아울러 박해의 전반적인 배경과 순교의 의미, 편지 내용을 토대로 한 순교자 신앙을 면밀히 파헤쳤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및 124위 순교자 시복식을 앞둔 시점에서 중요한 교육 자료이자 문화 콘텐츠인 셈이다.

정 교수는 “교회 안에서보다 교회 밖 일반 대중들, 특히 이 시대 젊은이들이 믿음을 위해 목숨 바친 이순이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성찰했으면 좋겠다”며 “교회 또한 교회 안팎으로 이 같은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관심을 갖고, 소중한 신앙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건강한 토론의 장을 많이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