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진정한 평화 위해 수도자로서 소명 다하겠다”

“진정한 평화 위해 수도자로서 소명 다하겠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당일 현장 지켰던 조명순·유재영 수녀
 


수녀들은 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때 팔이 부러지고 머릿수건이 벗겨지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켰나.

지난 6월 11일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당일 현장을 지켰던 성가소비녀회 조명순(캐서린)ㆍ유재영(마리루나) 수녀를 만났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인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녀들은 “수도자의 존재 이유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펼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느님 나라는 곧 ‘평화’다.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불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나선 것”이라고 했다.

조명순 수녀는 “모든 생명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미생물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에게 이런 상황을 만드는 국가 권력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다. 이러한 불의 때문에 미약하지만 밀양 현장을 가게 됐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127번 송전탑 예정지에서 하룻 밤을 지새우면서 극도의 공포와 비인간적 만행을 경험했다. 그는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괴뢰군이라도 된 걸까? 반역자라도 된 것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경찰과 한전 직원, 밀양 공무원들이 움막을 부술 때 ‘예수님 예수님!” 하는 외침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조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지만, 정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수도자들도 나서서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일생도 그랬다. 수도자들은 예수님 삶을 따라 정의롭지 못한 부분에 미약하나마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밀양 할머니들과 계속 연대할 것”이라고 재차 다짐했다.

 

▲ 유재영(왼쪽) 수녀와 조명순 수녀가 6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밀양 행정대집행 상황에 대한 긴급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129번 송전탑 건설 현장 움막에 있었던 유재영 수녀도 ‘선택’이란 단어로 말문을 열었다. 유 수녀는 “수도원에서 기도할 수 있지만 이젠 직접 참여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됐다. 이는 ‘필연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유 수녀는 덧붙여 “정부는 신고리 원전 3ㆍ4호기의 전력을 대도시에 공급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을 선택했고, 밀양 주민들은 후손과 자연을 위한 ‘생명’을 선택했다”면서 “이는 소수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적 차원에서 바라볼 중요한 생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옆에 있던 시튼수녀회 한 수녀가 팔이 부러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유 수녀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며 “진정한 평화를 위해 수도자로서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