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단원고에서 팽목항, 대전월드컵경기장까지 순례하는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이호진씨

단원고에서 팽목항, 대전월드컵경기장까지 순례하는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이호진씨
 
800㎞에 새기는 슬픔과 위로, 사랑
 
▲ 김학일씨(왼쪽)와 이호진씨가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순례를 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11일 오후 충남 아산에서 천안으로 이어지는 한 도로변.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중년 남성 두 명이 아스팔트를 걷고 있었다. 한 남성은 5㎏이 넘는 무거운 십자고상을 지고 있었다.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됐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남성의 가슴에는 앳된 고등학생 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 위에는 ‘단원고 2학년 4반 김웅기’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김웅기(제준이냐시오)군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45명 중 한 명이다.

김웅기군 아버지 김학일(루도비코, 와동일치의모후본당)씨와 단원고 2학년 8반 이승현(희생자) 학생 아버지 이호진(예비신자)씨, 그리고 이군의 누나 이아름씨가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 대전 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8일 단원고를 출발한 이들은 36일 동안 약 800㎞를 걸어 8월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봉헌되는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에 참례할 계획이다.

이들이 순례를 시작한 이유는 희생된 아이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이호진씨는 “참사가 너무 빨리 잊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면서 “우리들의 순례로 잊히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늦춰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진도 팽목항에서 처음 만났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던 두 사람은 며칠 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다시 만났다. 십자가 순례를 생각하고 있던 이씨는 김씨에게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김씨는 흔쾌히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팽목항에서 만났던 현우석(의정부교구) 신부의 축복을 시작으로 8일 긴 여정을 시작했다.

김씨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면서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과 실종자들을 위해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를 바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잘 곳도 쉴 곳도 정해놓지 않고 길을 떠났지만, 사제들의 배려로 순례길 곳곳 성당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수원교구의 한 신부는 이들의 순례 소식을 다른 교구 사제들에게 알려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10일 대전교구 공세리본당에서 묵은 이들은 이튿날에는 아산 모종동본당에서 마련해준 점심을 먹고, 성당에서 쉬며 재충전을 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상병(전의본당 주임) 신부는 11일 이들과 함께 걸으며 천안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이씨는 “승현이를 떠나보낸 후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내버려두셨을까?’ 하고 하느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면서 “정말 많이 힘들 때 신부님, 수녀님들이 상처를 보듬어주셔서 위로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와 인연이 있는 사랑의씨튼수녀회 한 수녀는 지난 6월 이씨와 딸 아름씨를 광주 수녀원으로 초대해 다른 수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웅기가 떠나면서 소중한 선물을 많이 주고 갔다”면서 “아들이 떠난 후 하느님과 더 가까워졌고, 가족들과 대화가 없었는데 지금은 서로 위해주고 아껴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십자가를 지고 걷는 동안 웅기 생각이 계속 난다. 웅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웅기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만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만약 교황님을 뵙게 되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해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15일 현재 충남 논산을 순례하고 있다.

평화방송 라디오(105.3 ㎒)‘기도의 오솔길’(매주 월~금 저녁 7시 30분 방송)은 김학일씨와 전화 연결, 평화방송·평화신문 페이스북을 통해 순례 소식을 틈틈이 전할 예정이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