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쁜 소식

[사설] 새로운 희망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자 - 2015년 을미년 새해 새 아침에

2015년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푸른 색이 뜻하는 깨끗함과 순수함, 영원성과 생명에 더하여 양이 표상하는 순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청양(靑羊)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실상 그분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나아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온갖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총과 평화가 그리스도 신자들은 물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하루의 시작일 뿐이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가 각별한 것은 한 해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희망이 없을 때는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작한다더라도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할 것이다. 희망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새해가 이미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뿐 아니라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우리의 희망이 한낱 신기루에 그치지 않고 삶에 활력과 기쁨을 주는 참다운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일이 있다.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과 성찰과 회심이다. 지나온 나의 삶, 우리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고 무엇이 잘된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돌아서려고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그것이 회심이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각종 사고와 병폐로 얼룩진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뼈저린 성찰과 굳은 회심을 요구하게 한다. 

하지만 지난 한 해의 기억이 나쁜 것으로만 도배돼 있지는 않다. 진한 감동에 대한 기억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그의 행보는 이 땅의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생생한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방한 기간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참다운 나눔과 소통이란 무엇인지,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교황과 함께한 4박 5일은 세월호 참사로 충격과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에게 아름다운 감동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을미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감동을 되새기며, 이 한 해가 새로운 희망의 원년이 되도록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앞장서서 노력해 나갔으면 한다. 신자들은 복음의 기쁨을 사는 사람들이 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했듯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믿는 신앙인들의 모습이 “장례식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결코 안 된다”(「복음의 기쁨」 10항). 사목자들은 양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양들을 끌어안는, 한 마디로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면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전체가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복음의 기쁨」 24항). 

을미년 새해를 새 희망의 원년으로 삼는 대열에 선의를 지닌 모든 국민도 함께 나서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분열과 혼란에 빠뜨리는 독선과 아집, 정쟁을 그치고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소통의 정치, 상생의 정치에 힘을 쏟을 때, 기업들이 이윤 창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이익의 공정한 분배와 사회 환원에도 적극 나설 때, 노동자들 역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힘을 모을 때, 우리 사회에는 희망의 물결이 아름답게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희망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