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사설] 교황의 선물과 우리의 과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계단을 내려올 때 그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목자였다. 공항의 환영행사는 소박했다. 하지만 그 낮고 소박함은 큰 울림을 예고하고 있었다. 실제 그 울림은 거센 폭풍이 돼 이 땅을 휩쓸었다. 그 폭풍은 불신과 분열, 갈등과 대립, 무관심과 이기주의, 가치관의 혼란으로 범벅된 이 땅, 그러면서도 “정의와 평화와 일치에 대한 불멸의 희망을 품고 있는” 이 땅에 변화와 쇄신의 기운을 불어넣은 희망의 폭풍이었다.

그 희망의 진원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 자체였다. 그의 행동은 겸손하면서도 친근했고, 격의가 없었지만 경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정확하고 날카로웠으나 적대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고,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았다. 한결같은 목자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 감동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를 보고 감동하라고 한국과 한국교회를 찾지 않았다. 그의 방문에는 한국 사회와 교회를 향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입국하는 공항에서, 청와대와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솔뫼와 해미의 젊은이들과 만남에서, 124위 시복식에서,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명동성당에서까지, 교황은 가는 곳마다 자신의 행동과 말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에 온 것은 큰 축복의 선물이었다면, 그가 말과 행동으로 전한 메시지는 우리 사회와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풀고 하느니 보시기에 좋은 더 나은 내일을 가꾸기 위한 지침이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읽어내고 실천하고 노력하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평화신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살피고 그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계속 간직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지를 주요 과제로 삼아 독자들과 나눌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4박 5일 교황의 행보에서 우리가 마땅히 귀감으로 삼아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한곁같음, 신실함과 맥을 같이 한다. 교황은 공항 도착에서 출국할 때까지 한결같음을 보여줬다.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공항에 도착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게 “잊지 않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교황은 방한 기간에 유가족을 만나고 대화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아픔을 함께하는 교황의 마음은 실종자 가족 앞으로 쓴 편지와 귀국 비행기 안에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한 말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진정성은 공감을 얻지 못하면 쉽게 거부되거나 배척당할 수 있다. 방한 기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은 사람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공감하게 했다. 공감을 얻으려면 교황 자신이 밝혔듯이 다른 이들의 말을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경험과 희망과 소망과 고난과 걱정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감하는 방법의 본보기를 제시했다.

겸손함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배워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덕목이다. 겸손은 마음의 가난함, 소박함과 뜻이 통한다. 교황은 겸손함과 소박함의 미덕으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진한 감동을 안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배워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종교를 떠나 수많은 사람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호했지만, 그는 인기스타나 유명 정치인으로서 방한하지 않았고 방한 기간 그렇게 처신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의 힘임을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교황은 자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떠났다. 하지만 교황이 말과 행동으로 남긴 메시지는 변화와 쇄신의 새로운 동력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