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 방한] 새벽부터 장사진… 교황 모습 보이자 “비바 파파” 연호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시복식 현장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 집전에 앞에 앞서 오픈카를 타고 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십 만 명의 신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124위 시복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124위 시복 미사가 거행된 1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자원봉사자들과 미사 참례자들로 꼭두새벽부터 들썩였다.

미사 입장은 새벽 4시부터였지만 밤을 새워가며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온 신자들은 1시간 전부터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수백 미터씩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그래도 피곤하거나 지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 배보람(루치아, 27)씨는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귀국해 새벽 2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교황님을 한국에서 직접 뵐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렌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 운남동성당에서 온 기범석(엘레우데리우스, 55)씨는 “미사에 배정된 자리가 제대에서 가장 먼 곳이라 아쉽지만 교황님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미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동이 트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서도 신자들의 광화문 광장 입장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신분 확인과 보안 검색을 거쳐 광장에 입장한 신자들은 지정된 구역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도를 바치며 시복미사를 기다렸다. 광장 주변은 사전에 미사 참례를 신청하지 못한 신자들로 속속 들어찼다.

5시 30분쯤 동이 트면서 어둑했던 광화문 일대가 밝아왔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대에는 8m 높이의 좌대 위에 4.6m 높이의 십자가가 우뚝 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대 왼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 사도의 모후상’이 놓여 있었다. 넓은 장소에 비해 높이가 낮은 제단과 제대는 신자들과 눈을 맞추며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신자들 입장은 7시쯤 마무리됐다. 날씨는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보와 달리 해가 비치고 가끔 구름이 끼는 정도였다. 선선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기다린 신자들은 “날씨가 시복식을 도와주고 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다” 하며 비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냈다. 교황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신자들은 8시 30분쯤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마리)씨의 연주를 듣고 난 뒤 한목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날 교황은 시복미사 집전에 앞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7위가 탄생한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기도를 바쳤다.

성지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60여 명을 포함해 1000여 명이 기도를 바치며 교황을 기다렸다. 이들은 서소문성지를 관할하는 서울 중림동약현본당이 초청한 이들로 본당 신자와 지역 주민, 순교자 후손 등이다.

8시 50분쯤 성지에 도착한 교황은 순교자현양탑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여 1분간 기도했다. 이어 성지에 모인 이들에게 강복을 줬다.

이준성(중림동약현본당 주임) 신부는 “교황님과 함께한 기도는 이곳 서소문에서 순교한 분들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성지를 떠난 교황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픈카로 갈아타고 30분간 광화문 광장을 두 바퀴 돌며 신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띠고 신자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경호원을 통해 갓난아기를 받아 안수기도도 해줬다. 광장 바닥에 앉아 4~5시간씩 교황을 기다린 신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를 외치며 교황을 뜨겁게 환영했다.

교황이 탄 차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자 교황은 차를 멈추게 하고 손수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유가족을 축복하며 위로를 건넨 교황은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김영오씨가 건네는 편지를 직접 받아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교황 수단에 달린 노란 리본 배지가 비뚤어진 것을 본 김씨는 배지를 바로 잡아주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교황에게 호소했다.

◎…시복미사가 끝나자 신자들은 역사의 현장에 교황과 함께했다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안복덕(데레사, 55, 서울 도봉동본당)씨는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시복되는 것을 보니 정말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훔쳤고, 서울대교구 가톨릭경제인회 유영희(프란치스코) 회장은 “신앙은 불가사의한 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서 복음을 노래로 선포한 임재엽(서울 대신학교) 부제는 “이 자리를 있게 한 순교자들을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미사 내내 들었다”면서 “처음의 걱정과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어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편지향기도를 한 유은희(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는 “감격과 감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면서 “교황님을 가까이서 뵈니 정말 기쁘고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감격해 했다.

6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온 차반디(비비안나, 명동본당)씨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는데,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평소 생각지 않았던 우리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미사 후 광장에 모인 수십만 명이 동시에 해산했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 신자들은 구역별로 퇴장 순서를 알려주는 안내방송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1시간여 만에 모두 해산했다. 덕분에 오후 5시까지 예정됐던 교통 통제도 2시간 정도 일찍 풀렸다.

신자들은 또 입장할 때 전례 예식서 등 자료와 함께 받은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수십만 명이 있다 간 자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깨끗해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미사의 숨은 주역은 5000여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수십만 명의 신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광화문광장 일대는 물론 을지로와 종로, 시청, 명동에까지 신자들의 입퇴장 안내를 도왔던 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새벽 2시부터 나와 신자들을 맞았다.

광화문 근처에서 안내 봉사를 한 박병용(베드로, 56, 서울 창5동본당)씨는 “교황님을 실제로 뵐 수 있는 날이 또 오리라고 생각지 않기에 잠을 못 자고, 더운 데 서 있는 그런 고생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이렇게 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회현역 입구에서 신자들 안내를 도운 임하영(클라라, 24, 서울 삼성동본당)씨는 “교황님이 주례하는 시복미사에 봉사자로 참여해 뿌듯하다”며 “가톨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정률ㆍ박수정ㆍ이정훈ㆍ김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