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이냐시오(EBS 이사ㆍ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중국의 선종(禪宗)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어느 사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매일 법회가 열릴 때면 법당 앞에서 시끄럽게 울곤 했다. 주지 스님이 설법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스님들은 법회가 열릴 때면 으레 고양이부터 뒤꼍의 기둥에 묶어두었다. 세월이 흘러 주지 스님도 죽고, 고양이도 죽었다. 그러나 법회를 열기 위해 고양이부터 묶는 것은 이 사찰의 유구한 관습이 돼버렸다. 만약 고양이가 안 보인다면 아랫동네에 가서 고양이를 빌려와서라도 기둥에 묶어놓아야 했다.
굳이 불가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은 인습의 속성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습에 한번 얽매이면 벗어나기 힘들다. 인습을 진리보다 더 추종하기도 하고 인습이 진리를 훼손해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이럴 때 인습은 우상이 된다.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을 앞두고 평신도 사이에는 대규모 축하 수행단을 꾸려 로마에 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동안 추기경ㆍ대주교 서임 때면 평신자들이 당연히 행했던 유구한 관습이요, 미풍양속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중단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었다. 새 추기경들을 임명하면서 "가난과 절제의 복음 정신과 거리가 먼 세속적 형태의 축하식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한국 교회는 대규모 수행단 원정이 더 이상 유구한 관습도, 미풍양속도 아니란 점을 새삼 각성하게 됐다. 최소한, '과거엔 그랬을지 모르나 이제부터는 아니다'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이래서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또 확인하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강물의 뒷 물결은 쉼 없이 앞 물결을 밀고 나간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숙명이며, 지도자는 바로 그러한 세상의 흐름을 앞장서 주도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도자 1위'라는 표현만으로는 미흡한 감이 있다. 단순한 지도라기보다 종파를 초월해 온 세계 대중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스타'라고 해야겠다. 헌데, 교황에게는 여느 스타들과 다른 점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옛말도 있지만, 대중을 즐겁게만 해주는 게 아니라 '옳은 말씀’만 하시는데도 그렇게 인기가 좋은 것이다.
겸손하고 검소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실천적으로 사랑하는 데에 열정적인데 언제나 그 표정은 기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사람'처럼 엄숙하거나 권위주의적이지 않다. 대중은 그러한 분을 갈구해온 것이다.
물론, 교황의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예전 교황도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리와 거리가 먼 인습들을 타파하고, 교리를 이 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 새로 정비하면서 스스로 예수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 바로 쇄신이며 개혁인 것이다.
교황의 8월 방한은 아시아 청년대회 및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큰 영광이지만 교황 방한에 의미를 깊게 새기려면 더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선, 큰 행사를 치르는 만큼 다른 종교들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사회 전체에 더 큰 자비와 정의, 화해와 관용의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또 교회 울타리를 넘어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더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현재는 권력자나 부자의 손을 더 잡거나, 교회 내부관리나 체제유지에 더 치우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신부님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주의, 즉 '영적 세속성'도 한층 더 가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점차 심화하고 있는 교회내의 이념적 양극화 및 갈등 현상도 해소할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은 이미 50년 전 2차 바티칸공의회와, 30년 전 한국 최초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가 함께 참여했던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가 지향했던 과제들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쇄신하시려는 일이다. 이 일들을 노력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교황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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