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 이후,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가?] 우리의 숙제는 가난·섬김·투신
▲ 전원 신부(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IM0824000006174.eps 1 1 |
4박 5일간의 교황 방문 일정이 무사히 끝났다. 한국사회는 마치 천사처럼 나타난 교황에게 위로와 힘을 얻었다. 교황의 시선은 늘 연민과 사랑으로 아프고 상처 난 곳을 찾았다. 그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유일한 분단국가,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곳, 경제적 성장 이면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소외되고 빈곤을 겪고 있는 나라, 물질주의 우상에 빠져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 나라에 교황은 시선이 머물렀을 것이다. 여름휴가를 마다하고 고령의 나이임에도 지구 반대편 이곳까지 오신 이유다.
교황이 탄 비행기가 로마를 향해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교회를 향해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하고 일깨운다. 현실로 돌아와 교황 방문 이후, 정말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실행해 나가라고 주문한다. 짧은 기간 한국에서 보여주신 그분 삶의 모습과 가르침을 고스란히 한국교회가 살아야 할 숙제로 넘겨받은 것이다.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
교황은 주교들에게 한국교회가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가 되도록 해달라 주문했다. 기억의 지킴이란 한국교회가 가진 영적 유산에 대한 기억이다. 이번에 시복된 124위처럼 많은 순교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평등과 사랑, 회개와 내적 쇄신의 삶을 살았고 목숨까지 바쳤다. ‘기억의 지킴이’란 이런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기억하고 보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은 아름다운 신앙에 대한 기억이 단순히 그때 받은 은총을 고이 간직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기억 안에 담긴 우리들의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즉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간직한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는 주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쇄신해야 할까? 그것은 오늘날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가르침에 모든 답이 있어 보인다.
첫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이다. 교황의 삶이 그렇듯이 그분의 화두는 ‘가난’이다. 그분에게 가난은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 머물지 않는다. 가난은 성서적 신학적 주제이며 교회 삶의 중심이다.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가난한 이들 인격 안에 통합됨으로써 비로소 주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된다.
교황이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스스로 한국의 작은 차를 타고 생활에서도 가난한 모습을 보인 것은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는 한국교회를 쇄신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평신도 수도자 사제 주교들이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며 우리 교회가 물질주의 세상을 거슬러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보여주는 ‘희망’이 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섬김의 삶이다. 교황이 보여주셨던 낮은 자의 겸손한 행보는 우리 교회의 거짓 권위와 교회의 권력화에 대한 도전이다. 그분은 스스로 낮은 이가 되어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섬겼다. 그분의 이런 모습은 사목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본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쇄신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성직자 중심주의와 권위주의를 꼽고 있다. 사목자들은 섬김의 리더십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눈물 흘리는 한 마리 양 위해
세 번째는 투신과 참여의 삶이다. 한국을 방문한 교황의 관심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집중돼 있다. 마지막 날 명동성당 미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북 화해와 평화를 역설하며 우리 사회 소수의 고통 받는 이들, 위안부 피해자, 밀양,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노동자, 새터민, 납북자 가족 등을 초대했다. 아흔아홉 마리 양만을 돌보며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교회가 되라는 요청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길을 잃고 고통받고 있는 한 마리 양 안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저기 교회가 있어 마음 든든한 세상의 ‘희망의 지킴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교황께서 맨 앞자리에서 교회가 살아야 할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 교회가 고스란히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