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 방한] 사학 죄인 ‘단죄’의 현장에서 ‘복되다’ 환호 메아리

서울 광화문광장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시복식 열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시복을 선언하자 무대 양 옆 전광판에 124위 복자화가 공개되고 신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교황, 사도의 권위로 하느님의 종 124위 복자로 선포

축일 5월 29일… 한국교회, 아시아 복음화 주역 다짐



‘사학(邪學) 죄인’이라고 단죄하던 역사의 현장에 그 죄인들을 복되다고 칭송하는 찬미와 환호가 울려퍼졌다.

“본인의 사도 권위로, 공경하올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를 복자 반열에 올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포가 울려 퍼졌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이 복자가 되는 순간, 124위 복자화가 펼쳐지고 성가대가 부르는 환희의 찬가가 광화문 일대에 메아리쳤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124위 복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본받아 21세기 새로운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고,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124위 시복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중심이 된 103위 시복시성과 달리 한국교회가 주체가 되고, 103위보다 먼저 시복됐어야 할 124위를 뒤늦게나마 시복함으로써 후손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교황이 시복식을 직접 주례하는 것도 매우 예외적인 일로, 한국교회의 큰 영광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 수십만 명이 광화문광장과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봉헌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는 교황이 라틴어로 주례하고 신자들은 한국어로 응답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소박하면서도 장중하게 거행됐다.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뤄진 승리를 경축한다”며 “그분들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이름 옆에 나란히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면서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끝에 인사말을 통해 “오늘 시복식은 가톨릭 교우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 나아가 아시아의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이어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복음화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은 미사에 앞서 한국교회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헌화하고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이동한 교황은 그곳에서 오픈카로 갈아타고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퍼레이드를 하며 참석자들과 뜨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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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가톨릭 성가 283번 ‘순교자 찬가’가 광화문 광장 일대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오픈카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교황에게 환호를 보내던 신자들은 이내 벅찬 감동을 가라앉히고 순교자 찬가를 부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드디어 시작됐다. 교황은 이날 순교를 상징하는 빨간 제의를 입고 라틴어로 미사를 주례했고 신자들은 한국어로 미사에 참례했다.

◎…고백기도와 자비송을 바친 후에 이어진 시복식에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교황 앞으로 나아가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주시기를 겸손되이 청원한다”고 말하며 시복을 청원했다. 시복청원인 김종수 신부는 시복 대상 순교자들의 약전을 낭독했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시복을 선언했다.

124위 복자가 탄생하는 그 순간,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지며 124위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이 공개됐다. 시복을 청원한 안 주교는 한국의 124위 순교자를 복자로 선포한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교황과 평화의 인사를 나눴다. 신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며 복자 탄생의 기쁨을 나타냈다.

 

◎…이날 보편지향기도에서 유은희(한국순교복자수도회) 수녀는 복자 윤지충과 순교자들의 모범을 통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본받아 한마음 한뜻으로 이 민족과 인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게 하소서”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중국인 이홍근(마리아수도회) 신부는 중국어로 박해받는 교회를 위해 기도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이 신부는 “고통받는 교회를 돌보시어 희망을 잃지 않게 하게 해달라”면서 주변 교회의 협력을 통해 박해받는 교회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이 밖에도 신학생 이훈(아우구스티노)씨가 영어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제,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계성여고 2학년 이지영(가브리엘라)양은 세계 평화를, 교리교사 이지영(가타리나)씨는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성찬의 전례가 시작될 땐 강지형(요셉)ㆍ김향신(마리아) 부부와 부부의 셋째딸(예은 완숙골롬바)과 막내딸(세은 마리에따)이 교황께 예물을 봉헌했다. 소박한 예식을 지향하는 교황 뜻을 따라 성합과 성작, 주수병 이외의 다른 예물은 봉헌하지 않았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께 사목방문과 시복미사 집전에 대한 감사인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124위 복자 탄생을 감격해 하며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 복자가 된 의미를 되새겼다. 또 103위 순교성인과 124위 순교복자의 신앙 후손으로서 아시아 복음화에도 앞장서기를 다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