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이 남기고 간 선물-한국 주교단과의 만남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 경계

 

▲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 한 연설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노인과 젊은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부탁했다. 사진은 14일 주교회의에서 주교단과 함께 한 프란치스코 교황. 백영민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 한 연설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노인과 젊은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부탁했다. 사진은 14일 주교회의에서 주교단과 함께 한 프란치스코 교황. 백영민 기자






교황이 한국교회 주교단에 한 연설은 무엇보다 연설의 대상이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주교들이라는 점에서 사목적으로 큰 의의를 지닌다. 한국교회를 구성하는 16개 교구의 최고 결정권자가 교구장 주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은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은 연설에서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사제를 돌보는 주교가 사제들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먼저 기억의 지킴이가 되라는 것은 교황의 방한 목적과 맞물린 주문이다. 즉 교황이 16일 시복한 124위 같은 초기 교회 순교자들을 감동시킨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에 비추어 한국교회가 자신의 진정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은 “기억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기억으로부터 영적 자산을 꺼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면 어떤 영광스러운 과거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의 지킴이는 자연스럽게 희망의 지킴이로 연결된다. 회고를 위한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억이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복음이 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하게 한 바로 그 희망을 지키고 이어가라는 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교황의 강력한 요청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희망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황은 무엇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쏟아야 하며, 잘 사는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교황 착좌 이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외쳐온 교황의 핵심 가르침이다. 더불어 교황이 한국교회가 중산층화되는 것을 지적한 것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을 만큼 풍요롭고 사목적으로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교회가 그리스도교의 근본을 잊지 않고 또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운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태만해지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것이다.

교황이 한국교회가 희망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으로 젊은이와 노인을 꼽은 것도 눈에 띈다. 교황이 젊은이 교육에 많은 배려를 부탁한 것은 교회의 미래는 젊은이에게 달려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해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목자의 목자’인 주교들에게는 늘 사제들 곁에 머무르기를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사제들이 주교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사제의 사목생활에 주교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인식에서다. 교황은 주교와 추기경 시절, 교구 사제들이 언제든 만나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사제들의 친구였다. 교황의 당부는 주교의 근본 직무를 확인시킨 셈이다.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 교황이 한국교회에 남기고 간 과제다. 숙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일만 남았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