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시복의 기쁨 안은 124위 후손들](5) 이경도·순이·경언 후손 이순주씨

“남은 여생, 순교정신으로 살겠다”

 

▲ 복자 이경도ㆍ순이ㆍ경언의 후손인 이순주 할머니가 자신이 색칠하고 공부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새로나는 성경공부」(전3권) 인쇄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세택 기자




“아흔이 다 되도록 신앙으로 살아오니 이런 일도 있네요. 꿈인지, 생시인지 벅찬 기쁨뿐입니다.”

순교 복자 이경도(가롤로, 1780∼1802)ㆍ순이(루갈다, 1782∼1802)ㆍ경언(바오로, 1792∼1827)의 후손인 이순주(아기 예수의 데레사, 89, 서울 잠원동본당) 할머니는 시종 감격스러워했다. 16일 광화문광장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맨 앞에 앉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예식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슬하 10남매 가운데 세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지만 15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맏아들 강덕행(전주교구) 신부만 사제로 살고 있는 터여서 아쉬움이 남던 차에 선조들이 시복의 기쁨을 안아 감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구순을 앞두고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 「새로나는 성경공부」(전 3권)에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림을 덧칠한 것을 자식들이 영인본으로 만들어 편지와 함께 교황에게 선물로 드려 더욱 감격스럽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외조부였던 이익의 학풍을 이은 이윤하(마태오)와 권철신(암브로시오)ㆍ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의 누이인 안동권씨 어머니의 슬하에서 태어난 3남 2녀 중 세 분이 한꺼번에 복자가 되셨으니 이런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온 집안이 다 감격에 젖어 있었지요. 그래서 시복 소식과 함께 교황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제 인생 희로애락 가운데서 중심이 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그동안 공부한 「새로나는 성경공부」를 교황님께 선물로 드리게 됐습니다.”

내년으로 구순을 맞는 이 할머니는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손을 뻗었던 여인처럼 작은 정성을 드린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이 책은 평생 무지하게 살아온 제가 당신 말씀만이 살 길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생애의 뜨거운 감사가 담겨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의 노구조차 무색하게 하실 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시복을 해주신 교황님께 특히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시복식에 가서 교황님을 직접 뵙고 오니 마치 예수님을 뵌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1968년 10월 로마 성 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24위 시복식에 가려다가 남편(강재희 베드로, 2012년 선종)이 병이 나는 바람에 가지 못한 한을 이번에 풀었다”는 할머니는 “시복예식에 만일 나쁜 일이 생기면 제가 거기서 대신 죽고 싶다는 순교정신으로 갔는데, 시복예식이 무사히 마무리돼 기쁘기 짝이 없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또 “1980년에 서울로 이사하기까지 전주에 살면서 본당 행사를 할 때마다 치명자산에도 갔는데, 그곳에 묻힌 순교자들이 제 선조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며 “몇 해 전 이분들이 저희 집안 선조라는 사실을 오빠에게서 들은 게 생각나 신청을 하고 시복예식에도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 영광을 위해 여생을 순교정신으로 살며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봉사라도 하겠다”고 다짐하고 “시복식을 보고 나니 마음만은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래서 요새 기도는 주님께 무언가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며 “육체적 순교는 하지 못하는 시대지만 정신적으로는 순교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