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 <15>윤유오·권상문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 <15>윤유오·권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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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공동체 대감마을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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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들의 안내를 받아 양근 대감마을을 순례하는 교회사연구동인회원과 신자들. 사진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
오늘날 양평 지역을 말하는 양근에 ‘대감마을’(한감개)이라는 동네가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는데 주역이 된 권철신(암브로시오, 1736∼1801)ㆍ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51∼1792)의 고향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지다.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이 학문과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던 천진암과 주어사가 인근에 자리잡고 있고,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이나 ‘호남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도 이곳에서 교리를 배웠다.
대감(大監)마을은 현재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보는 게 대체적 견해다. 대석리는 대감마을의 ‘대’자와 남서쪽 흰돌마을, 곧 백석골의 ‘석’자를 따 부르게 된 지명으로, 교회 기록에는 ‘한감개’ 혹은 ‘감산’이라고 나온다. 조선 후기 읍지 영근편에는 ‘남시면 대감포리(大甘浦里)’가 나오는데, 이를 우리말로 풀면 한감개가 된다. 대감마을의 위치에 대해선 이견도 있다. 수원교구 원로사목자 변기영 몬시뇰은 권철신의 5대손 권오규 변호사와 후손들의 구전, 다산 문집 등을 토대로 대감마을을 ‘양평 읍내’로 비정했고, 권철신의 묘지명에 등장하는 권철신의 거주지 감호(鑒湖)를 북한강 북안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그 정확한 위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대감마을은 124위 중 권씨 형제의 제자인 윤유일(바오로, 1760∼1795)ㆍ유오(야고보, ?∼1801) 형제, 사촌인 윤점혜(아가타, 1776∼1801)ㆍ운혜(?∼1801) 자매 등이 살았던 마을이고, 권일신의 둘째 아들이자 권철신의 양자인 권상문(세바스티아노, 1769∼1802)의 고향이다. 이 가운데 윤유일은 이미 소개했기에 윤유오와 권상문을 살핀다. 윤점혜ㆍ운혜 자매는 다음에 소개한다.
우선 1795년 순교한 ‘교회의 밀사’ 윤유일의 동생 윤유오는 경기도 여주 점들(현 여주군 금사면 금사리) 태생이다. 그렇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양근 한감개로 이주해 살았다. 일찍부터 형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고향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웃에 교리를 전하는 데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형이 순교한 뒤에는 인근에 살던 조동섬(유스티노, 1738∼1830), 권상문 등과 만나 기도 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연구하면서 신심을 북돋으며 ‘친교의 공동체’를 이뤘다. 또한 1795년 초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지방순회에 나서 양근에 도착하자 주 신부를 만나 성사를 받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체포된 그는 양근 관아에서 갖은 문초와 형벌을 당하면서도 배교를 거부했으며 마침내 그해 4월 27일 양근 관아 서쪽 큰 길가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윤유오와 함께 기도 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연구했던 권상문은 생부 권일신이 죽임을 당하자 한때 마음이 약해져 교회를 멀리했으나 주 신부가 입국한 뒤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성사를 받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때 동료들과 함께 주 신부를 방문하고 모임을 가졌으며 얼마 뒤에는 고향 양근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1795년 을묘박해로 주 신부가 피신을 하게 되자 사흘간 주 신부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교리를 배웠다. 하지만 그 역시 1800년 6월 양근에서 일어난 박해로 체포돼 동료들과 함께 양근과 경기감영 등지를 오가면서 문초와 형벌을 받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한양으로 압송돼 또 다시 포도청과 형조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혹독한 문초를 견디며 신앙을 증거하자 고향으로 보내져 1802년 1월 30일 양근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윤유오ㆍ권상문 순교자의 피로 쓰인 순교의 기억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그 기억은 그리스도교적 실존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서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교회적 삶과 결실의 원천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진실로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를 깊이 깨우쳐 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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