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인터뷰 전문] 제병영 ˝교황의 어법,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정곡 찔러˝

* 예수회 제병영 신부,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 인터뷰


[주요발언]


"출판사 의뢰로 프란치스코 교황 관련 책 번역"

"가톨릭교회 역사상 예수회 출신 교황은 처음, 기쁘면서도 조심스러워"

"때로는 박수를 치고 싶고, 때로는 자신과 이웃의 모습이 보여 슬프고 두려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법은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정곡을 찔러"

"교황, 신자유주의 부작용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하고 변화 촉구"



[발언전문]


‘가난한 이들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이제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역대 교황 가운데 이토록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교황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교황의 솔직하고 자비로운 행동과 인정어린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교황 프란치스코가 걸어 온 삶의 여정과 영성, 어록을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 한국사회를 반추해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토요 초대석>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 등을 번역해서 책을 펴 낸 제병영 신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제병영 신부님은 1983년 예수회 입회해 1994년에 사제품을 받았고, 서강대학교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국제문화교육원 원장으로 봉직하고 계십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 프란치스코 교황과 관련한 책들을 번역해서 내놓은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 작년 3월에 제가 캄보디아에 선교사 일을 6년 동안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마침 새로운 교황님이 나오셨고, 우연히 출판사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303> 원고를 보게 되었고, 처음 봤을 땐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두 번 더 읽으면서 정말 좋은 말씀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고, 그것을 번역함과 동시에 메튜 번슨이 쓴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어록은 한두 문장으로 구성돼 있잖아요. 그런데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하신 말씀들을 제가 번역하면서 이해를 많이 하게 됐고, 그 책을 보면서 제가 사제이지만 몰랐던 여러 교회의 모습과 콘클라베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빠져들어가면서 제가 우스갯소리로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해서 번역을 빨리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면서 작년 연말에 교황으로 취임하시고 난 뒤에 어떤 말씀들을 하셨을지 궁금했고, 그래서 바티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올 1월 1일까지 하신 말씀들을 다 읽어봤습니다. 좋은 말씀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제별로 묶어서 책을 펴게 됐는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 교황님의 원서는 어떤 언어로 되어 있나요?

▶ 제가 번역한 책은 둘 다 영어고요. 교황님 말씀들은 바티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5개 국어 정도로 다 나와있기 때문에 저는 영어판을 번역했습니다.



- 콘클라베에 있었던 일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데요. 공개될 수 있는 부분은 공개됐나보죠?

▶ 아니죠.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는데,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에 추기경 총회가 여러 번 열리죠. 언론에서 추기경들에게 인터뷰를 신청하면 중간에 추기경들에게 인터뷰를 못하도록 막습니다. 콘클라베 안에서 있었던 일은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저희들도 모르죠. 단지 아는 것은 며칠에 몇 번째 투표에서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정도는 알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비밀로 되어 있고, 교회법적으로 제가 알기론 추기경선거인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밖에서 발설하게 되면 파문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교황님께서는 예수회 출신 아니십니까? 처음 콘클라베에서 선출되셨을 때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어요?

▶ 저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에 있으신 분들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교회사상 예수회 출신 교황님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리고 감회가 깊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 다른 두 권의 책과 달리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얼핏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이시게 되었나요?

▶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를 보면 매듭을 푸는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황님께서 사제였을 때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하셨는데 성당에 있는 매듭을 푸는 마리아를 보시고 감명을 받아서 복사본을 돌아가실 때 가져가셨고, 특히 대주교이셨을 때 매듭을 푸는 마리아에 대한 -을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본인께서 직접 기도문도 작성하시고, 추기경이었을 때 매듭을 푸는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해서 선물했고, 이번에 당신께서 취임하실 때 아르헨티나에서 그분께 비슷한 -을 선물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교황님 말씀을 전부 읽으면서 분류하면서 책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매듭을 푸는 마리아가 생각났고, 교황님 말씀이 세상의 매듭을 푸는 말씀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듭을 푸는 마리아를 네 가지로 분류해놓았는데 소통의 매듭을 풀고, 사회의 매듭을 풀고, 가정의 매듭을 풀고, 교회의 매듭이 푼다고 되어 있고, 8장 40꼭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이 두껍습니다. 350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래서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코이노니아로 매듭을 푸는 교황님>이라고 해서 이 책의 엑기스만 뽑아서 ‘90일동안 당신을 변화시킬 이야기’라고 조그맣게 책을 냈습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을 살피고 그분의 말씀, 어록을 정리하면서 어떤 소감을 가지셨나요?

▶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제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서론에도 적었습니다만, 때로는 박수를 치고 싶고 때로는 자신과 이웃의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왜냐하면 제가 인간으로서 또는 사제로서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정말 기쁨을 느끼게 됐고 이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씨앗의 역할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번역을 하면서 제가 또 한 가지 열망이 있었다면 교황님이 어떤 분인지를 어린 아이들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침 -가 개신교 신자인데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그 책을 읽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서 창작동화를 썼습니다. 제목이 <나도 교황님처럼 될래요>인데, 제가 지인의 도움으로 출판비를 지원받아서 부모님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이 책을 읽는 독서캠페인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8월 31일까지 광화문 교보와 영등포, 종로 지점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와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책을 사시면 동와책을 선물로 드리는 행사를 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화법과 관련해서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보세요?

▶ 제가 생각하기엔 그분께서 육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물론 이해하지 못하죠, 스페인어를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글로써 접할 수밖에 없는데, 항상 생각하는 것이 그분의 어법은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실에 대해서 정곡을 찌르는 주장을 주저하지 않으시고, 비판이라기보다는 잘못됐다는 것을 가감없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그분이 지닌 특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 정의라는 잣대에서 명확히 말씀하시죠.

▶ 물론 정의겠지만 정의를 어디에 붙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제가 생각했을 때 교황님께서 정의를 이야기하실 땐 분명하게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된 것들이라고 봅니다.



- 어록 가운데 특별히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말씀이 있으신가요?

▶ <어록303>에서 하신 말씀인데, ‘에이즈환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나의 행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고통당하는 우리의 흉기를 숨긴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에서 제가 번역한 부분인데, 작년 브라질의 청년대회에 가셔서 청년들과 하신 십자가의 길에서 하신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날마다 수천킬로그램에 이르는 음식을 버려가며 호사를 부리는 세상의 이면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약물중독의 희생자가 된 자녀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부모님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종교나 신념 때문에 혹은 단지 피부색깔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오직 이기주의와 부패만을 보여주는 정치개혁기관들을 보고 믿음을 잃은 많은 청년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들과 복음적 직무들의 잘못된 증거로 인해 교회에 대한, 심지어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청년들과 함께하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영성이 교황께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시는지요?

▶ 그걸 제가 따로 말씀드리는 것보다 교황님께 직접 당신이 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는지 말씀하셨어요. 콘클라베가 열리면서 선거를 하는 동안 거의 2/3를 득표해서 제가 듣기론 박수가 나오고 결정된 순간에 그분께서 “저는 성직자 성명의 -이며 성 파올로의 명예대주교인 클라우디오 오메스 추기경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좋은 친구, 좋은 친구’하며 그는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개표가 2/3쯤 진행됐을 때 새 교황이 결정되었다며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포옹과 키스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마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이 제게 강렬히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저는 프란치스코를 떠올렸습니다. 개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저는 지난 여러 전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역시 평화를 대변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제 마음에 들어온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고백하셨어요.



-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을 이야기하자면 예수회를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해서 예수회에 입회하게 된 건가요?

▶ 그분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사제에 대한 승소를 하시게 된 것이 1953년 9월 21일 학생의 날 행사 참석을 위해 학교로 가던 중 성당을 지나가면서 고백성사를 보고 싶었다고 해요. 들어가서 고백성사를 봤는데 본당신부님이 계시지 않고 다른 신부님이 계셨고 그분에게 성사를 보고 난 뒤에 성사를 보기 전과 후에 전혀 다른 자기를 발견하게 됐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듬는 것을 느꼈고, 그리고나서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예수회 학생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물었어요. 어떻게 예수회에 들어가셨는가, 그래서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는 예수회 위탁 운영된 신학교를 잘 알았기에 예수회를 선택했습니다. 특히 예수회가 제게 인상을 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선교정신, 공동체, 그리고 규율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는 진짜진짜 규칙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규율이 제게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안토니오 -신부와의 인터뷰 내용이었고요. 이탈리아 예수회 학생들과의 면담에서는 예수회가 가진 순교적 열정 때문에 입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수도회 모토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맞습니까?

▶ 네.



- 최종 서원을 하고 예수회 정식회원이 되기까지 전통적으로 길고 강도 높은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 그렇죠. 기본적으로 입회에서 걸리는 시간이 약 11년입니다.



- 예수회에서 유명한 영신 수련이란 게 어떤 원리로 진행되는 수련 과정인지 궁금합니다.

▶ 영신 수련은 성 이냐시오가 30일간 침묵 속에서 묵상과 관상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느님을 알고, 내 자신도 알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것을 정리점검하는 것이죠. 살아가면서 하느님이 창조주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순간에 우리가 창조주라고 하고 있거든요.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에서 벗어나는 수련을 하는 것인데, 4주간으로 이뤄져있습니다. 1주간은 하느님이 얼마나 내 자신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가, 2주간에는 예수님의 -에 대해 관상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서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생활을 오감을 사용해 맛볼 수 있게끔. 3주간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4주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맨 마지막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모든 세상의 창조구간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죠.



-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 모습을 알기위해선 교황께서 살아오신 시대와 지역적 배경도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재임하던 1973년부터 1979년까지, 관구장 신부로서 직면했던 가장 큰 도전 중의 하나가 해방신학의 수용 문제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해방 신학에 대해선 어떤 입장을 보이셨나요?

▶ 당시 관구장으로서 입장은 교회입장을 분명히 고수하셨습니다. -께서 해방 신학에 대한 지침서를 발표했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지침에 따라 경영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부분에서 많은 비판도 동료들에게 받으셨는데, 그분이 생각하는 것은 사제들이 총을 들고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사제이다, 그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아주 보수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정말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해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하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르헨티나의 현대사를 들춰보면, 길고긴 공포와 두려움의 군부독재시절을 거치지 않았습니까? ‘더러운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1976년부터 83년까지는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사제로서,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서 고뇌가 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 당시의 상황과 교회의 응답은 어떠했나요?

▶ 사실 ‘더러운 전쟁’에 있었던 아르헨티나는 암흑의 시대였죠. 당시 정권에 의해 3만 명에 이르는 정치인, 교사, 학생, 노동조합원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죽었고, 마르크스 게릴라들이 6천명에 달하는 군인들과 정권 옹호자들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에 일부 예수회 사제들이 이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그분께서 단호히 ‘우리는 사제들입니다. 게릴라나 혁명가는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 무기를 들어 자신의 삶을 폭력과 -에 굴복시키지 말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예수회 두 신부님이 잡혀가죠. 이분께서는 당시 대통령궁에 미사를 하던 예수회 회원이셨는데 그분보고 아프다고 하고 자신이 대신 들어가서 미사를 하고 대통령에게 자비를 청하는 일이 있었고, 그 뒤에 이 두 신부님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관구장으로서 게릴라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밀고했다는 오해도 받으셨죠.



- 현 프란치스코 교황인 당시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신부가 주교품을 받은 게 1992년이고, 주교 모토를 ‘자비로이 부르시니’로 정했는데요. 이 구절을 택한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 -하는 장면을 연상하셨는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실 때 마태오의 입장에서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불러준, 내가 개인이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나를 인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부르셨다는 것, 항상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서 인간을 부르신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가 배타적이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경제와 금융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어찌보면 아르헨티나에서 경험했던 경제 금융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신부님께서도 그렇게 보시죠?

▶ 그렇죠. 그분께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교구장을 마칠 때까지 그런 상황이 계속 있었고, 그러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그레고리오 당시 주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군중들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분노해서 폭도로 변해 2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강론에서 ‘가난한 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해를 받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갈채를 받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일으키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 지금도 끊임없이 지적하시고, 변화를 촉구하고 계시죠.



-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0년에 동성애자 결혼을 허용한 첫 번째 남미 국가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동성애자의 결혼 문제를 비롯해서 낙태와 안락사에 대한 교황님의 인식과 대응은 어떠했는지요?

▶ 당시 2010년 동성애자 결혼을 허용할 때 추기경으로서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역부족이었고 이번에 교황이 되시고 나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만약 교황이 동성애자들을 -한다면 이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질문으로 이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 게이를 보시면 사랑으로 지지하실까요, 아니면 거부하고 책망하실까요. 하실까요. 우리는 항상 사람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존재의 신비 안으로 들어갑니다. 삶에서 하느님은 사람들과 동반하시고, 우리는 그들과 동반해야 합니다. 자비심을 가지고 그들과 동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단이 일어나면 성령께서 사제들이 올바른 것을 말하도록 영감을 주실 것입니다.” 우회적인 표현이지만 사랑을 받아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태에 대해서는 굉장히 반대하시죠. 교황께서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시는 것이 지금의 세대가 인간의 위기시대이고, 인간을 -소비계층으로 생각한다고 하시죠.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인간을 소모품과 같이 판단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굉장히 반대입장을 취하고 계시죠.



- 교황께서 이제 닷새 후면 한국에 오십니다. 교황 방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저는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요.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을 방문하는 것에 의미가 있고, 특히 청년대회에 관심을 많이 보이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시아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복음의 메시지를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우리 124분의 시복을 거행하면서 한국천주교회가 가지고 있는 순교의 신앙을 정말 구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로서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또 세 번째는 남북한 관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되고, 넷째는 한국사회가 여러 잣대로 얽혀있는데 서로 비방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형제적 연대성을 실천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교황 방한이 방한 행사 그 자체로서만 끝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교황을 맞이하는 우리 자신과 교회의 노력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첫째는 우리가 교황님을 맞이하면서 교황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그분이 주신 메시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변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지금까지 제병영 신부님과 함께 교황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어록에 대해 말씀 나눠봤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PBC 김영규 기자 | 최종업데이트 : 2014-08-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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