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호외] ‘단죄’의 현장에서 ‘복되다’ 환호 메아리

교황, 5월 29일 축일 거행… 서소문순교성지도 참배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124위 시복식에 앞서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124위 복자 가운데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는 27위에 이른다. 사진= 공동취재단 

 

“본인의 사도 권위로, 공경하올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를 복자 반열에 올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포가 울려 퍼졌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이 복자가 되는 순간, 124위 복자화가 펼쳐지고 성가대가 부르는 환희의 찬가가 광화문 일대에 메아리쳤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124위 복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본받아 21세기 새로운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고,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124위 시복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중심이 된 103위 시복시성과 달리 한국교회가 주체가 되고, 103위보다 먼저 시복됐어야 할 124위를 뒤늦게나마 시복함으로써 후손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교황이 시복식을 직접 주례하는 것도 매우 예외적인 일로, 한국교회의 큰 영광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 수십만 명이 광화문광장과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봉헌된 124위 시복미사는 교황이 라틴어로 주례하고 신자들은 한국어로 응답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소박하면서도 장중하게 거행됐다.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뤄진 승리를 경축한다”며 “그분들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이름 옆에 나란히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면서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끝에 인사말을 통해 “오늘 시복식은 가톨릭 교우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 나아가 아시아의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복음화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은 미사에 앞서 한국교회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헌화하고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이동한 교황은 그곳에서 오픈카로 갈아타고 광화문광장을 돌며 참석자들과 뜨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