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103위 성인에 124위 복자 더해져 순교 영성 본받기도 두 배로

124위 시복 의미에 대해 듣다- 한국교회 시복 추진 진두지휘한 박정일 주교(시복시성주교특위 초대 위원장)

 

 박정일(은퇴, 전 마산교구장) 주교는 오는 8월 16일 서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재로 거행될 124위 시복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박 주교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서 10여 년 동안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추진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지역 교회 차원에서 거행되는 시복식은 교황청 시성성장관 추기경이 주재하는 것이 관례인데 교황님께서 직접 시복식을 거행하시는 것은 아주 예외적입니다."

 박정일 주교는 교황 방한 발표 후 평화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교황님의 시복식 주재는 우리의 기쁨을 한층 더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주교에게 124위 시복의 의미와 추진 과정, 교회와 신자들이 해야할 일 등에 대해 들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박정일 주교를 위시한 시복시성 추진위원회 위원들은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객관적 조사를 위해 현장 조사만 20차례 실시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6월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를 현장조사 후 박 주교가 성지를 순례온 신자을 축복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 사진



△먼저 시복시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시복시성(諡福諡聖)의 시(諡)는 죽은 이에게 드리는 이름이나 호칭을 뜻합니다. 시호(諡號)라는 말이 있는데, 임금이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사후에 내리는 칭호(稱號)를 가리키지요. 이순신 장군의 시호는 충무(忠武)인데,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무인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가톨릭교회에도 순교자나 생전에 거룩하게 사시고 공이 크신 분들에게 사후에 드리는 칭호가 있습니다. 그것이 복자(福者)와 성인(聖人)입니다. 교회법은 "교회 권위가 성인들이나 복자들의 명부에 올린 하느님의 종들만을 공식 경배로 공경할 수 있다"(1187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복식, 시성식은 교회가 복자와 성인을 선포하는 예식을 말합니다."
 
 △복자와 성인은 어떻게 다른지요.

 "복자는 한 나라나 한 수도회 안에서만 공적으로 공경하는 분을 말하고, 성인은 전 세계교회가 공적으로 공경하는 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복자는 성인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124위 순교자가 시복되면 우리 한국에서는 공적으로 이분들에 대한 공경이 이루어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보편교회의 공식 전례력에도 124위 축일이 등재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이미 시성된 103위 순교성인은 교회 전례력에 축일(9월 20일)이 등재돼 있고, 전 세계교회가 공적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자와 성인을 공경해온 역사를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초대교회 때는 순교자만을 성인으로 공경했습니다. 4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증거자들 (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거룩하게 살며 교회에 공이 있는 이)도 성인으로 공경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선포를 공동체의 장(長)인 주교들이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고 교구 수가 늘어나면서 성인 선포에 따른 부작용이 생겨나면서 10세기 중반에 와서는 교황만이 성인 선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성절차법이 생겼고 몇 차례 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라는 칭호는 뒤늦게 14세기에 와서 비로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시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124위 순교자 시복에는 특기할 만한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우리 순교자들의 시복이 2번 있었고(1925년에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과 1968년에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각각 로마에서 있었음), 이번이 세 번째 시복인데 한국에서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복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선교사들인 파리외방전교회의 주교와 사제들이 주도했지만 이번 세 번째 시복은 우리 한국교회가 자체로 주도한 결과입니다.

 둘째, 앞의 두 차례 시복(103위)에는 한국의 초기 순교자와 첫 번째 큰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들이 빠졌었는데 이번에 그분들이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신유박해 이후에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124위 시복 추진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1984년 5월 6일 103위 복자의 시성이 이뤄진 후부터 한국교회는 초기 순교자와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것은 각 교구장 주교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런데 여러 교구가 개별적으로 시복을 추진한다면 인적·물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어서, 주교회의는 2001년 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차원에서 통합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부터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124위 순교자 시복 청원 절차를 밟기 시작해 절차를 마무리하고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청원을 위한 모든 문건을 제출한 것이 2009년 6월 3일이었습니다. 만 8년 5개월의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복시성주교특위 모든 위원들의 수고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 동안 시복 대상자들을 선정하는 회의를 3차례, 순교자들의 성성(聖性)과 특히 순교사실을 확인하는 시복재판을 16차례, 순교자들의 묘소와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순교자들의 성성과 순교 사실에 대한 평판을 조사하는 현장 조사를 20차례 실시했습니다. 그 밖에도 고문서 전문가 회의, 시복관련 교구 대표자 회의, 순교자들의 묘소 개봉,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회의 등 약 50차례의 모임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시성성에 제출한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문건 총 매수가 A4용지 1만2650쪽, 포장 문건의 무게가 총 92kg, 로마로 보내는 우송료가 1865만원이었습니다."

 △124위 시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훌륭한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큰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103위 성인에 더해 124위 복자를 모시게 됨으로써 한국교회의 위상이 한층 더 크게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직접 시복식을 거행하시게 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로서 우리의 기쁨을 한층 더해 주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관례적으로 시복식은 시성성 장관 추기경께서 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각별한 한국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교황님을 환영하며 사랑의 기도를 마음껏 바쳐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번 교황님의 한국 방문이 분단된 우리나라에 평화와 화해의 선물이 풍성히 내리는 계기가 되도록 열심히 기도드려야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되는 순교 영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순교 영성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따르고 순교자들의 생활을 본받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순교자들이 지녔던 향주덕, 즉 신ㆍ망ㆍ애 삼덕을 본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교 선조들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으며 부귀영화와 쾌락 등을 초개같이 여기며 살았습니다. 또 오로지 하늘나라를 바라며 박해의 모든 고통,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모진 박해의 고통을 감내하고 목숨까지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나아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웃 사랑, 특히 가난하고 미천한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잘 실천했습니다. 신분제도가 뚜렷했던 그 시대에 양반과 천민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도우며 산 순교자들은 가히 선각자들이었습니다.

 한가지를 더 보탠다면 순교자들의 용덕, 곧 용기를 본받는 것입니다. 성가에도 나오듯이 우리 순교 선조들은 참으로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들"이었습니다.

 현대는 '백색 순교의 시대'입니다. 백색 순교란 피흘림(적색 순교)은 없지만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꽃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에 어려움과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박해 시대에 버금가는 어려움이 많은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생활에도 신앙을 방해하는 간교한 유혹과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 사랑으로 감내하는 것이 백색 순교입니다."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순교자들이 복자가 된 후에도 우리는 그분들이 이른 시일 내에 성인 반열에 올라 전 세계 교회의 공경을 받고 귀감이 되도록 기도를 계속 바쳐야 합니다. 복자가 성인이 되는 데는 복자들의 전구로 한 건 이상의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계속적인 기도가 요청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