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이 남기고 간 선물

화해와 평화·일치 위해서는 일흔 일곱 번도 용서해야

 

▲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고 화해의 은총을 받아들여 모든 이와 나누라”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명동성당에서 행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은 남북이 70년 가까이 분단돼 대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한 사회 내부에서도 분열과 대립이 끊이지 않은 한반도에 참다운 화해와 평화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교황은 우선 화해와 평화, 일치 같은 가치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주목하면서 이 은혜의 선물은 다른 한편으로 회심과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화해와 평화를 위해 먼저 요청되는 것은 회심이다. 70년 가까이 분열과 갈등을 체험해온 역사에서 회심하라는 요구는 우리에게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이바지했는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이라고 교황은 밝힌다. 말하자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사람이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해 얼마나 복음적 관심을 증언했는지를 반성하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한다”고 교황은 지적한다.

이런 회심과 함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요청되는 것은 용서다. 교황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예수님 말씀은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이라며 용서를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용서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용서와 화해의 힘임을 믿는다. 그래서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교황은 이것이 “한국 방문을 마치며 남기는 메시지”라고 언명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힘을 믿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교황은 강조한다.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기회가 샘솟듯 생겨나도록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관대하게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 자매이며 한 가정원의 구성원이자 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더욱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방한 기간 중 사제들에게 직접 연설할 기회가 없었던 교황이 이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특별히 사제들에 관해 언급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황은 사제들을 “그리스도의 사절이자 또 그리스도의 화해시키는 사랑의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면서 “존경하고 신뢰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유대”를 △본당 안에서 △사제들 사이에서 △그리고 주교들과 함께 계속 이루어나갈 것을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공직자·외교단과 만남

6ㆍ25 전쟁 이후 경제 발전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온 한국 사회는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비용과 효율만을 앞세운 압축 성장의 폐단들로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 외교단과 만남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과 씨름하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경제 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아픈 대한민국에 교황이 내린 처방은 그가 한결같이 강조해 온 ‘사람 중심’의 사회다.

교황은 대통령과 공직자들에게 “공동선과 진보,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자신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서도 사람보다 돈이 앞선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를 비판하며 인간 이해가 결여된 비인간적 물신주의를 경고했다. 이와 함께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통탄하며 배척되고 소외된 이들, 버려진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교황은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 공직자의 책무임을 일깨우며 “한국 사회가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 앞장서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모든 인류가 전인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대의 세계화는 혼자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발을 맞춰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의 세계화를 위해선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조차 지킬 수 없는 이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와 함께 교황은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화해와 연대의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특히 외교단에겐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면서 평화의 부재로 고통받아온 한국사회에 ‘정의’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라면서 이 같은 정의가 곧 평화로 이어지는 것임을 일깨웠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