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교황 방한 결산] 목사가 본 프란치스코 교황- 채수일 목사(한신대 총장)

‘정의로운 평화’ 정수 가르쳐줘

 

 

▲ 채수일 목사(한신대 총장)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4박 5일간의 방한이 끝났습니다. 교황님의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는 그분이 교황으로 선출되면서부터 곧바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이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서 고통받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하는 복음적 신앙에서 나온 교황님의 말씀과 삶이 그토록 감동과 충격을 준 것은 한국 교회가 너무 부유하고, 이른바 중립적이고, 깊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 복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한국 교회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14일, 방한 첫째 날,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단과의 만남에서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입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의 없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억압적 평화는 권력자의 평화이지 민중의 평화가 아닙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로운 평화’입니다. ‘정의로운 평화’는 역사를 ‘잊지 않는 것’,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황님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표징으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누군가 교황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니 노란 리본을 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교황님은 말씀하셨다지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그리스도교는 중립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만일 중립이 무선택, 무관심을 의미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구원과 부활에 대한 소망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중립적일 수 없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정의로운 평화’가 무엇인지, 왜 교회가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하는지,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이전부터 한국의 일부 근본주의적 개신교회들이 교황님의 방한을 반대했습니다. 아마 이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대회도 반대한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시복식 날 서울역 앞에서 ‘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교황님과 가톨릭교회를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악을 쓰며 비난하는 한 여성을 봤습니다.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가톨릭과 자리를 같이하는 한국교회협의회(KNCC)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수준과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교회도 역사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웃 종교의 뜻깊은 국제적인 행사를 환영하고 축복하지는 못할망정 근거도 없는 무식한 비판을 일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일부 근본주의적 개신교도들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비난과 반대가 교황님의 방한 후 가톨릭교회로 이동할 잃어버릴 신도들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개신교회는 한참 잘못 짚은 것입니다. 개신교의 마이너스 성장과 사회적 위상의 추락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차이와 유무를 넘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분의 복음적 삶과 증언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이웃 종교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걱정하고 자신을 위해 더 울어야 합니다.

다행히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비롯한 많은 개신교회가 교황님 방한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공감하는 능력은 진정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냅니다’(8월 17일 해미순교성지 연설 중에서). 교황님의 방한 후, 진정한 대화와 진정한 만남이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활발하게 시작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