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일어나 비추어라] 교황 방한과 124위 시복의 의미

[일어나 비추어라] 교황 방한과 124위 시복의 의미
 
순교자들의 승리와 영광의 날
 



여진천 신부 (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 통합추진위원)

한국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이 1925년과 1968년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각각 있었다.

1925년 7월 5일 오전 10시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이 열렸다. 이때 시복식에 참석한 경성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승리와 영광의 날이다. 하느님께 찬미!”라고 기록하면서, “한 고위 성직자에 의해 힘차고 또렷한 목소리의 시복 소칙서의 낭독이 있었고, 이어 (순교자들의) 영광이 드러났다. 그것은 감탄이었다. 어떻게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였다.

1968년 10월 6일 오전 10시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열렸다. 이날 오후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24위의 한국 순교자는 영웅 정신과 굳은 신앙의 모범”이라고 극찬하고, “유럽 신자들은 한국 순교사를 연구하여 한국 천주교의 훌륭한 표양을 본받으라”고 촉구하시면서 “오! 꼬레아… 피로써 신앙을 기록한 순교자들이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진리를 선포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한 이 신앙이야말로 이제로부터 영원무궁할 초자연적 새 생명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103위 성인 중의 한 분인 다블뤼 주교는 「조선 순교사 비망기」에 신유박해 순교자 황일광(시몬)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면서 “교황께서 그를 제대 위에 올려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 진정한 종교예식을 드리게 허락하여 주신다면, 우리는 너무나 행복할 것이다”고 하였다. 천상에 계시는 주교님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세 번째 시복식은 오는 8월 16일 오전 10시 직접 방한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집전하신다.

2005년 이후 시복식은 교황이 아닌 시성성 장관 등이 거행해왔다. “시복식은 언제나 교황 행위이지만, 통상적으로 교황을 대리해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거행하게 될 것”이라는 교황청 시성성의 2005년 9월 23일 자 ‘시복식의 새로운 절차에 관한 공지’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8년 11월 2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일본 순교자 188위 시복식은 전 시성성 장관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스 추기경이 거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교황께서 직접 한국을 찾아 시복식을 집전하는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배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순교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과 기쁨이 배 있는 박해 장소이자 역사의 공간인 광화문에서 교황께서 직접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포하는 장엄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따라서 그 의미가 더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순교자들이 시복되는 이날은 주교님들의 말씀처럼 승리와 영광의 날이요, 행복한 날이다. 이날 두 번의 시복식 때 걸렸던 순교자들의 초상화처럼 124위 복자들을 한 폭에 담은 걸개그림을 시복미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얼굴과 다르지 않은 복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의 삶을 기억해야 하고, 그들이 만났던 하느님을 다시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