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한국땅에 첫발
14일 오전 10시 15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 알리탈리아기(機)가 서울 성남공항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당도했다. 이윽고 전세기 문밖으로 교황이 미소를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알리는 순간이다. 전날 저녁 11시(한국시각) 로마에서 출발한 지 11시간여 만이다. 교황은 소박한 프란치스코 스타일대로 집무실도, 침대도 없는 전세기로 일등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타고 도착했다. 교황은 기내에서 주한 교황청 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의 환영을 받은 후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한국 땅을 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교황을 영접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한국에 오셔서 환영합니다. 한국에 모시게 돼 한국민이 모두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민이 계십니다”라고 답하며 한국과 인연을 붙여 답했다.
교황 환영단 가운데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등 주교단을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 124위 순교자 후손, 새터민, 외국인 선교사, 장애인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화동으로 참석한 남매 최우진(프레데리코, 계성초 6)ㆍ최승원(가타리나, 계성초 2) 학생은 교황에게 꽃다발과 직접 쓴 손편지를 전달했다. 교황은 이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친절하다. 감사하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교황은 이날 다른 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하면서도 절제된 미소를 보였다. 한국을 오는 동안 함께한 수행 기자단에게 “세계 곳곳에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연일 사망자가 속출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내전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한 교황의 표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던 데는 이번 방한이 단순한 방문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가 처한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지고,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사목방문이어서다.
환영단 가운데 서 있던 고 남윤철(아우구스티노) 교사의 부모 남수현(가브리엘)ㆍ송경옥(모니카)씨 부부는 교황과 악수하는 동안 참았던 눈시울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자 교황 또한 가슴에 손을 얹고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의를 갖춰 허리 숙여 악수하는 이들 앞에서는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교황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는 말에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말했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평화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환영받은 교황은 자신이 요청했던 소형차에 오르기 전 특유의 미소를 잊지 않았다.
정약종 순교자 후손 정규혁(베드로)씨는 “기쁘기도 하면서 슬픈 느낌도 든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위해 핍박받았던 선조들과 어렵게 살아온 자손들의 힘겨웠던 세월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수현씨는 “교황님 방한을 통해 진정한 위로를 받고 싶다. 교황님의 위로 말씀을 통해 모두가 회개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